[73호]마음 키우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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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자는 제3의 직업을 가진 이다. 직업은 먹고사는 기본적 일을 뜻한다. 요즘 찬양자를 먹고살기 위한 직업으로 삼는 분은 그리 많지 않다. 풍요와 여유를 보장하는 호사로운 삶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사로운 보상을 보장하지 않아도 이 길에 미친 사람은 많다. 그 영향력은 보상을 뛰어넘기에 그렇다. 가끔 취미와 호기적 추구에서 끝나는 이도 있지만 노래와 찬양에 취향을 가진 자들에게는 생각보다 많은 선물이 있다. 먹고사는 일이 그렇게 중요한 일이 아니었을 때는 이 일은 매우 인기 있었다. 하지만 가진 자들이 예쁜 여자의 환심을 사는 것을 본 야망 있는 소년의 시대인 1980년대에 이르자 먹고사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그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향은 마치 오래전부터 진리처럼 굳어진 정의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만들어진 정의는 모든 세상이, 나라와 공동체와 가정과 교회가 추구해야 할 가치가 되어버렸다. 오늘날 부유하지 않은 교회는 교인도 공동체도 조직도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그리고 거기서 찬양하는 자들도 부실해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준비되지 않은 찬양을 하는 게 부실한 것이지 노래 잘하고 표현 잘하고 스피커 좋고 어쿠스틱 능력이 있는 악기주자가 없어서 부실한 게 아니다. 하지만 어지간한 교회 사이즈가 되면 전문 연주자들과 이름난 찬양자들이 찾아온다. 사람이 좋아하는 교회가 되어버린다.

K-Pop 그룹인 BTS가 빌보드 차트에서 1위를 했다고 한다. 한국 뉴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난리가 났다. 중소기업의 매출을 단 몇 명의 어린 소년들이 이루었다는 관점을 눈요기하라고 귀띔하는 논설을 편 신문도 본다. 유튜브에서 조회 수가 1억을 넘었단다. 이방 민족들도 우리 조선인들은 가무에 능하고 흥을 좋아한다고 기록한다. 이 흥이 돈이 되는 세상에 산다. 흥은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돈이 마음을 움직이는 시대에 산다.

신약성서에는 주님과 제자들이 찬양했다는 기록이 찾기 어려운데, 마태복음 26장 30절과 마가복음 14장 26절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갔다는 내용이 전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찬양했다. 기타와 드럼과 마이크가 없었을 것이다. 모르겠다. 작은 현악기와 리듬 악기들이 동반될 수 있겠으나 우리는 그 시대 초기 기독교 공동체에 대한 자료를 그리 많이 가지고있지 않다. 성서에 찬양이 어떻게 쓰였는지 알면 오늘날 찬양과 찬양자들의 마음밭이 비교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찬미’라고 번역된 ‘훔네오’로 이 단어가 신약에 4번 나오는데 주석에 의하면 시편 113-118, 136편을 인용한 것이라는 설들도 있다 한다. 아마 주께서 당시 보편적으로 외우고 노래하던 시편 찬미를 했던 것 같다. 117편은 매우 짧지만 아름다운 찬양이다. 이들 시편에는 인자(사랑), 즉 ‘헤세드’가 계속해서 나온다. 이러한 주의 인자하심을 높이는 것이 찬양이다.
또 신약에서 ‘훔네오’ 말고 보통‘ 찬양’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는, ‘율로게오’로 문자적 의미는 ‘좋은 말을 하다’이다. 신약에서 동사형이 44번, 형용사가 8번, 명사형이 16번 나오니 거의 70여 회 나온다. 흥미로운 것은 로마서 1장 25절과 9장 5절은 ‘찬송’과 ‘찬양’ 둘 다 ‘아멘’을 붙인다. 또 신기한 것은 주님께서 승천하신 후 많은 제자들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고 기술하며 누가복음은 끝난다. 누가는 찬양으로 그의 복음을 마무리하는데, 연결해서 쓴 사도행전은 ‘120여 명이 마가의 집 2층 홀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라고 기록한다. 복음과 성령과 찬양과 기도가 함께한다.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승천한 후, 이제 모든 것이 만천하에 그 진리가 선포되고 귀와 눈이 있는 자들이라면 이 일이 사실인 것을 알았을 것인데 그들 무리가 적지 않았고 성령이 그들에게 부어졌을 때 그들의 남은 삶은 그들의 능력과 부와 자기 신분에 상관없이 하나님으로 인해 능력을 얻었다. 그리고 그들은 기도하고 찬양했다.

주가 주신 나라가 이제 모든 삶의 가야 할 목적이 되었다. 기도와 찬양은 그러한 가치와 목적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는 찬양이 예전처럼 일주일에 한 번 평화로운 마음의 위로를 주거나 설교를 보조하는데서 멈춘다.
무엇을 잃었는가? 마음을 키우고 영을 세우고 하나님과 깊이 교감하는 순간순간에 사는 것을 잃었다. 그분이 가지신 것이 얼마나 놀랍고 위대하고 크신지 모르고 작은 자신을 가져와 예배하는 데 익숙하다. 가진것과 위장된 평화가 자신의 능력인 줄 착각한다. 자신의 능력도 자신도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알면 마음으로 돌아갈 수 있다. 이 일이 너무 늦지않게 시작되어야 한다. 찬양하는 마음에 하나님은 아주 가까이 계신다. 우리는 참으로 행운이 있어서 그 찬양하는 자들이다. 이제 주의 마음을 받아들이면 된다. 삶으로, 생활 속으로 다시 끌어와야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일주일에 한 번 불리는 회중 찬양은 전문 찬양자들의 선곡과 달라야 한다.

 

이선종 목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BA)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 Master Christian Music(MCM)
Korea Presbyterian College of America(MDiv)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Thm) 수료
Cantor, Music Pastor
카리타스합창단 음악감독
VKCC 지휘자
성서 번역가

_이메일 : Lk4241@gmail.com
_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unjong.lee.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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