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호]찬양자가 가보아야 할 특별한 다른 세계

0
256

“두려운 마음으로 주님을 섬기고, 떨리는 마음으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시 2:11, 새번역)

 이 한 줄이 선포하고 결론을 맺는 시점에 온 여정에는 다윗의 이루 말할 수 없는 기쁨과 감사와 놀라움과 크나큰 주의 인자하심으로 가득차 있다. 살펴보자. 다윗은 자신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이어왔는지 아주 실제적인 경험에 대해 이 시의 90%를 사용한다. 하나님이 자신을 찾아오고 자신을 일러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그래서 넌 내 아들 삼은 것이며 축복하신 일에 대해 소상히 밝힌다. 그런데 다윗의 적들은 자신에게 오신 하나님의 실체를 알지 못해 우스꽝스럽게 자신을 공략하는 바보 같은 짓을 한다고 기술한다.

다윗은 자신이 전쟁을 잘한다거나 능력이 많다거나 병사가 많다고 자랑하는 게 아니다. 자신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 자랑한다. 그분으로 인해 자신은 자신의 능력을 상회하는 다른 차원에서 온 존재에 대해 자랑한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전선에서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찾아오신 분의 능력 안에서 명령받은 심부름이나 할 뿐이다. 적들이여 나를 대신한 이를 두려워하라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이 말을 고한다. ‘두려운 섬김, 떨리는 찬양’ 구호를 외치듯 발표한다.

자신에게 찾아오신 하나님에 대해 자랑한다.

 섬기고 찬양하는 것이 하나님 백성이 하여야 할 가장 중요한 두 기둥이요, 두 기둥을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한 두 덕목이 두려움과 떨림이라는 것이다. 두려움은 히브리어로 ‘yare(야레, 경외)’요 떨림은 ‘rad(흔들림)’이다. 두려움은 매우 영적인 자기 점검으로 시작하지만 떨림은 하나님의 존재 앞에 선 자의 놀라움의 반응으로 마친다. 시작은 자기 영적 침묵과 깊은 인도하심에 대한 점검에 초점이 있다면, 끝은 하나님의 존재를 향한 흐느낌에 있다. 놀라움의 신체적 반응으로 물리적으로 육체적으로 시각적으로 매우 흥분된 표현을 사용한다. 하여 결국 멈춤이 불가능한 떨림으로 찬양하게 된다고 고백한다. 두려움은 다소 눈에 보이지 않지만 떨림은 눈에 띈다. 두려움은 영적 이끌림의 어렴풋한 마음이지만 떨림은 즉발적이고 표현적이며 겉으로 확연히 드러난다. 두려움은 떨림을 일으킨다. 두려움이 시작되고 주의 존전에서 동행하지 않는 마음은 가짜로 떨어야 한다. 가짜로 떠는 것은 푸닥거리다. 하지만 떨림이 일어나려면 두려움에서 시작해야 한다. 스스로 마음잡음 없이 두려움 없고 외적인 충격 없이 즉발적 떨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찬양자는 매우 영적으로 예민한 순간에 놓여있다. 두려움은 인간이 가진 가장 섬뜩하고 가장 무겁고 파급력과 항존성이 높은 감정이다. 흔히 두려움은 ‘무섭다’로 이해하기 쉽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런 감정에 사로잡히길 싫어한다. 하지만 두렵다는 야레의 진정한 뜻인 ‘엄청난 무엇이 실재한다’는 초월적 감정이다. 이 초월적 감정과 익숙해지려면 그 하나님의 만남 없이는 불가능하다. 두 가지는 하나로 묶여 있다. 하나님을 한번 본 자는 두려움, 엄청난 무엇이 실재하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이런 마음이 찬양자를 떨게 하는 것이다. 떠는 것 또한 무서워서 떠는 게 아니라 ‘멈출 수 없는 격한 감응’에 대한 현재적이고 즉발적인 표현이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자신을 느끼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신다. 그가 오늘 마음을 바꿀 수 있는 인간에 있는 아름다운 재료들을 사용하는 순간에 있음을 아시기에 이 순간을 행복해하신다. 하나님을 만나고 변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의 임재를 누구에게든 기꺼이 저렴(?)하게, 값없이 보이시기를 즐거워하신다.

하나님은 오늘도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자신을 느끼는 그 순간을 즐거워하신다.

 찬양자의 마음에 가장 가까이 하나님이 계신 이유는 하나님은 찬양자의 마음을 움직이고 싶어 하신다는 것이다. 그분이 가장 그분의 마음을 찬양자의 마음에 쉽게 나타내실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감정이시다. 필자가 그렇게 생각하고 주장하고 믿는 게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밖에서 오는 감정이시라는 것이다. 우리가 자기 기분에 느끼는 분이 아니다. 떨림을 다윗의 이 마지막 선포의 말에 드러낸 이유다.

찬양은 떨림이시다. 그것이 하나님을 목격하고 몸에서 전체로 일어난 외적 사건이다. 찬양은 온몸에서 일어나는 즉발적 자기 반응이다.

주님,
다시 두려움과 떨림 앞에 섰습니다.
다시 두려움을 일으켜 주옵소서.
두려움을 느끼게 하옵소서.
주님을 느끼게 하옵소서.

이선종 목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BA)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 Master Christian Music(MCM)
Korea Presbyterian College of America(MDiv)
Presbyterian Theological Seminary of America(Thm) 수료
Cantor, Music Pastor
카리타스합창단 음악감독
VKCC 지휘자
성서 번역가

_이메일 : Lk4241@gmail.com
_페이스북 : https://www.facebook.com/sunjong.lee.90

NO COMMENTS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