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호]성가(찬양)대는 누구의 아이디어인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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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마땅한 생각

 1980년경부터 전 세계에 있는 교회들에는 우리가 시작하고 있었던 이 교회처럼 혼란스럽고 점진적인 현상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었는데, 찬양대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거나 최소한 감소하고 있었습니다. 찬양대는 두어 명의 싱어들과 화끈한 밴드로 이루어진 ‘기를 쓰는 예배 기계’로 대체되고 있었습니다. 찬양대는 점점 더 부적절하고 무의미하게 보이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들에게는 찬양대의 시대에 뒤떨어진 뮤지컬 사운드가 근거가 되었고,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심심하고 지루한 전형적인 찬양대로 비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찬양대라는 이름의 무리는 오직 주일 아침에 기다려온 몇 번의 찬양을 부를 때만 활기를 띠고 그 이외엔 바쁘게 쪽지를 돌리며 예배드리는 동안에 무료하게 앉아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모습은 팔에 팔을 끼고 지옥문을 강타하는 용맹스러운 무리의 바람직한 예배 찬양대는 아니며, 만군의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열정과 기쁨을 가지고 회중을 인도하는 찬양대는 더욱더 아닐 것입니다.

예배 속의 찬양대는 누구의 아이디어입니까?

 이 내쉬빌교회의 예배인도자라는 새로운 위치에서, 저는 이 교회가 과연 찬양대를 필요로 하는지를 결정해야 했습니다. 저는 제가 명백하게 찬양대를 좋아한다는 저의 개인적인 생각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결국 핵심적인 질문이 제게 떠올랐습니다. ‘예배 속의 찬양대는 사람의 아이디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아이디어인가?’ 왜냐하면, 만일 교회의 찬양대가 사람의 아이디어라는 것이 밝혀지면 우리는 그것을 완전히 없애고 더 적절해 보이는 다른 양식을 추구하는 데 완전히 자유로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아이디어였다면, 우리는 그렇게 성급하게 결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는 처음에 제 사무실에 있는 다른 십여 개 번역판의 성경에서 ‘성가대’라는 단어가 딱 한 번 나오는 걸 발견하고는 낙심하였습니다. 느헤미야 12장을 보면, 유다의 70여 년의 바벨론 포로생활 후에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축하하는 행사를 성가대가 인도합니다. 에스라 2장 65절은 느헤미야서에 기록된 사람들로 보이는 포로생활에서 돌아온 200명의 남녀의 노래하는 자들을 서술해주고 있습니다. 저는 위아래로 살펴보았지만 더는 ‘성가대’라는 말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이 느헤미야서 12장에 나오는 16개의 구절은 비록 훌륭한 서술이긴 하지만 완전한 ‘성가대 신학’을 세우기에는 충분하지 못합니다.
 성경에서 발견된 것은 ‘노래하는 자들’이라는 수많은 성경적 기술이었습니다. 더구나 그것은 2명부터 시작해서 20만 명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노래하는 단체인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여러분은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저는 포기하지 못하고 생각하며 기도하며 성경을 좀 더 자세히 찾아보았습니다. 많은 무리의 노래하는 자들이 예배에서 사람들을 인도하는 어떤 표시나 암시라도 있을까? 저는 성경을 더 깊이 파헤쳤습니다.

다소의 격려

 처음에, 제가 전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 견해는 이것이었습니다.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매우 강한 표현이지만, 그 자체로는 그 진리를 충분히 설명하기에는 너무 부족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엄청난 하나님을 섬긴다면, 우리는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장엄한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다는 말이 됩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지구의 기초를 놓으셨을 때, 욥에게 주신(욥 38:7)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장엄한 이미지인,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혹은, 베들레헴 언덕 들녘에서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을 찬양하는 천군 천사들을 생각해 보시거나, 계시록 5장에서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라고 선포하는 하나님의 보좌를 둘러선 만만이요 천천의 천사들,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돌리는 하늘 위와 땅 위, 땅 아래와 바다 위, 또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만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또는 계시록 7장에서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라고 외치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를 생각해 보십시오.
 비록 위의 성경구절에서 어떤 구절은 누가 인도하며 누가 따르고 있는지는 별로 명확하지 않지만, 저의 생각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이 생각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선포하는 구절들이 구약과 신약 모두에서 많이 발견됨으로써 더욱 확실해졌는데, 그 성경구절들은 강력히 이끄는 예배인도자들에 의해 인도되는 위대한 찬양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김영국 목사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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