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호]여호사밧의 법칙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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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보기도(INTERCESSION)

유다의 적들은 역대하 20장에 기술된 대로 예상치 못한 전쟁을 일으키며 두 번째로 여호사밧에 대항하여 왔습니다. 이 전쟁은 여호사밧과 유다가 얼마나 많은 것을 배웠는지를 알아보기 위한 또 하나의 시험이 될 것입니다. 이런 식의 검증은 실제로 열(heat)을 적절하게 가할 때 철(steel)이 강해지는 것과 꼭 같이 하나님의 일을 강화시켜줍니다(사 48:10). 우리가 이 시험을 견뎌낼 때 하나님의 일이 실질적이고 효과적임을 우리만 확신할 뿐 아니라 사탄도 또한 확신하게 됩니다. 그와 그의 백성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구원을 맞보지 못한다면 총체적인 종족학살과 끔찍한 잔학행위가 확실한 상황에 직면하여 여호사밧은 다시금 다윗의 규범을 따랐습니다. – 그는 하나님을 찾기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그들의 절망적인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공개적으로 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의지함을 인정하는 그의 대단한 겸손을 주목하십시오(대하 20:12). 하나님은 유일한 참된 권위이십니다. 세상의 왕은 오직 백성들을 위한 대리 직권의 상징으로 있을 뿐입니다. 이 태도는 또한 다윗 통치의 초석(cornerstone)이기도 했습니다. 어떤 위기에서도 우리는 해결책이 무엇(what)인가를 알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누구(Who)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여호사밧의 중보기도 전체에 걸치는 초점은 하늘을 향하는 것입니다. 그는 시 24편에서의 다윗처럼, 여호와의 복을 받을 자들은, 손이 깨끗하며 마음이 청결하여 여호와의 전에 올라 예배하는, 곧 주님을 찾고 하나님의 얼굴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시 133 참조-연합하여). 이러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강하고 능하시며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이십니다”(시 24:8).

예언(PROPHECY)

하나님께서는 예언의 영이 흐르게 하심으로 상황에 개입하시기 시작합니다. “그때 마침 회중 가운데는 야하시엘이라는 아삽의 자손 레위사람이 있었는데 그에게 주님의 영이 내리셨다”(대하 20:14). 야하시엘이 음악인이었다는 사실로 인해서 이 사태의 변화는 홀연히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큰 중요성을 우리의 음악사역에 부여합니다. 우리의 음악적 재능의 열매는 위기의 한가운데서 사실상 하나님의 음성이 시작되는 데 사용될 수 있습니다.

역대상 25장 1-3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해줍니다: “다윗이 군대 장관들과 더불어 아삽과 헤만과 여두둔의 자손 중에서 구별하여 섬기게 하되 수금과 비파와 제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게(prophesied) 하였으니… 왕의 명령을 좇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prophesied)…. 수금을 잡아 신령한 노래를 하며 여호와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다윗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위기에 처한 사람들에게 “구원의 노래”를 부를 수 있다는 것을 사울을 섬기면서 배웠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이 노래했습니다: “주는 나의 은신처이오니 환난에서 나를 보호하시고 구원의 노래로 나를 에우시리이다”(시 32:7).

“야하시엘이 가로되 …….전쟁이 너희에게 속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라….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대하 20:15-17). 여호사밧과 유다는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예언자를 믿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주님 앞에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18절). 음악은 구원의 문을 열었고 백성들은 찬양과 경배로 그 문을 통과하여 곧바로 나갔습니다. 처음에 기술한 대로 음악인들이 그 전쟁에 앞장을 섰습니다. 사실 예언을 전달한 야하시엘은 전쟁에서 그 예언의 확실성을 테스트하려는 맨 첫 번째 사람이었음에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

함성(THE WAR CRY)

여호사밧이 예배자가 되었을 때 그의 시야는 자연 수위를 넘어 들리어졌습니다. 그의 눈은 기름 부음을 받아 높은 하늘의 전망을 보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관점으로부터 평범한 인간의 사고를 벗어나는 가능성을 보았습니다. 그는 유다 백성들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믿으면 주께서 그들을 위하여 어떻게 개입하실 수 있는지를 알았습니다.

시편 47편 1절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기쁨의 함성을(the voice of triumph) 외치라”라고 말합니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에게 그렇게 하라고 지시하셨을지 모릅니다. 어쩌면 여호사밧은 정말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송 중에 계시며(시 22:3) 그것은 우리가 위기에 직면하여 그를 찬양할 때 그를 전쟁에 모셔오게 된다는 것으로 이해하였을 것입니다. 이리하여 그는 그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복병”을 두실 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경우가 어떻든 여호사밧은 먼저 음악인들을 내보냈고 결과는 승리였습니다.

모든 교회음악이 엄격하게 예배음악은 아닙니다. 어떤 것은 하나님에 대한 경배라기보다는 적군을 흩어지게 하려는 것입니다. 교회에게 일어나 전투를 준비하라는 일련의 노래들이 있 있습니다(예를 들면, 십자가 군병들아, 십자가 군병 되어서, 마귀들과 싸울지라). 또 다른 그룹은 행진하는 승리의 노래들입니다(예수의 이름으로, 내 주는 강한 성이요, 군기를 손에 높이 들고, 나는 예수 따라가는). 우리의 승리는 어린양의 피와 우리의 증언으로 확실시됩니다(계 12:11).

전승 축하연(VICTORY CELEBRATION)

전쟁 후에 엘리사밧과 그의 백성들은 “브라가(축복, 송축) 골짜기에 모여서 거기서 여호와를 송축한지라….”(대하 20:26). 그들은 다윗의 기쁨의 행진을 했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 모든 사람이 여호사밧을 선두로 즐거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저희로 그 적군을 이김을 인하여 즐거워하게 하셨음이라 무리가 비파와 수금과 나팔을 합주하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여호와의 전에 나아가니라”(27-28절).

느헤미아 8:10절은 주님의 기쁨이 우리의 힘이라고 설명합니다. 이 진리는 다른 많은 성경구절에서 확인해주고 있습니다(예, 시 126). 기쁨의 찬양과 즐거워함은 백성들을 강하게 해주었고 찬양을 통하여 이김으로 얻은 믿음을 보강하여 주었습니다. 그들의 전승 축하연은 평화를 유지하는 데 기여하였고 그들의 통치권을 보존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 하나님이 사방에서 저희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대하 20:30).

이와 같이 우리는 “여호사밧의 행동 법칙”에서 하나의 규범을 보게 됩니다. 예배자로서 우리는 모두 영적 전쟁의 과정에 참여하게 됩니다. 여호사밧의 행동은 – 준비와 훈련, 중보기도, 예언, 함성 그리고 전승 축하연 – 예배와 특별히 다윗의 음악에 대한 지시가 영적 전쟁의 각 단계에서 그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승리로 나아가 그 승리를 선언할 때 우리는 여호사밧과 함께 우리의 모든 적들을 넘어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김영국 목사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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