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호]하나님과 만나야 할 이유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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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호부터는 도서출판 예수전도단에서 출간된『예배 혁명』(조건회 목사 지음, 2016)중 일부를 6개월 동안 나누게 되었습니다. 먼저 귀한 자료를 허락해주신 도서출판 예수전도단에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하나님과 만나야 할 이유

 

어떤 남자가 사랑하는 사람의 집에 와서 대문을 두드립니다.

 “누구십니까?”
 “나예요(It’s me!)”

그러나 여인은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문을 열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남자가 뭐가를 깨달았습니다. 역시 그날도 동일하게 여인은 묻습니다.

 “누구십니까?”
남자가 대답합니다.
 “바로 당신입니다(It’s you!)”

그때야 비로소 그 여인의 집 대문이 열렸답니다. 무엇을 이야기합니까? 사랑하는 대상의 마음의 문을 열려면 나의 입장에서 다가갈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무엇을 원하는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언젠가 어버이 날을 맞이해서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저녁식사를 한 적이 있습니다. 두 분은 저녁이고 하니 부드러운 음식을 먹자고 하셨지만, 좋은 날인데 고기를 드셔야 된다고 우겨서 고기집에 모시고 갔습니다. 그런데 그날 나온 고기가 얼마나 질긴지 저도 먹기 힘들 정도였고 두 분은 당연히 드실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저는 인생의 중요한 교훈을 깨달았습니다. 감동을 주는 삶은 내가 아무리 인생을 아름답고 깊이 있게 살고, 내가 아무리 옳다고 할지라도 결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우리는 아이언 사이드(H. A. Ironside)가 했던 말에 귀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려고 한다면 그 물의 온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제자훈련 교재』, 국제제자훈련원)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려고 하면서, 펄펄 끓는 물이나 차가운 얼음물을 준비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진정 남의 발을 씻기려면 물이 너무 뜨겁지도 너무 차갑지도 않은 물을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것은 매우 아름다운 일입니다. 그러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자기 주관대로 봉사할 때 오히려 상대를 실족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열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사실입니다. 올바른 방향이 아닌데 아무리 달려간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방향이 빗나간 열심은 달려갈수록 오히려 손해다’라는 말이 나온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려고 한다면
그 물의 온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관계를 뱆고 살기 위해서는 상대방이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방향 감각을 찾아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고아원, 양로원이나 장애인 기관에 찾아가는 사람들이 평상시보다 많아집니다. 이런 기관에서 일하시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제발 일 년 내내 나누어서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연말에 한꺼번에 몰려와서 선물을 주고는 그때마다 예배를 드리고자 하니, 고아원에 있는 아이들이나 양로원에 있는 분들, 특히 장애인 기관에 있는 분들은 몸 한 번 움직이기도 힘든데 얼마나 피곤하겠습니까? 자기중심적인 열심은 다른 사람을 피곤하게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발을 씻기려면 물의 온도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은 우리가 행복한 삶, 감동을 주는 삶을 이루어가는데 반드시 적용해야 할 삶의 지혜인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관계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살아갈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열심히 산다고 모두가 의미있는 인생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진정으로 의미 있는 인생, 후회 없는 인생, 가치 있는 인생을 사는 비결은 결코 내가 세운 인생의 목표를 따라 최선의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오직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신 하나님의 뜻과
나를 향한 하나님의 소원을 따라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때에도 ‘누구를 위한 예배인가, 무엇을 위한 예배인가?’에 대한 방향을 분명히 하고, 목적의식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잘못된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가장 순수한 사랑은 그 사랑의 목적이 자기 자신을 위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나로 인해 상대방이 기뻐하고 행복하며, 즐거워하고 만족하는 것을 볼 때 더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의 만족과 기쁨과 야망을 이루기 위해 상대방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참 사랑이 아니며 그 만남은 이미 순수한 동기와 목적에서 변질된 것입니다.

부모 자식 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이런저런 도움을 받으며 자라납니다. 그러나 장성하여 결혼하고 독립된 삶을 살아갈 때에는 부모를 만나는 목적이 길러주신 은혜와 사랑에 감사하고 보답하는 마음으로 부모님의 여생을 즐겁게 해드리려는 효(孝)를 위한 것이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장성한 후에도 자식이 부모를 찾는 목적이 여전히 뭔가를 얻어낼 생각뿐이라면 어떻게 그 만남에 진정한 기쁨과 행복이 깃들 수 있고, 부모의 마음을 감동시킬 수 있겠습니까?

옛말에도 조상들에게 하는 제사를 빗대어 “제사에는 관심이 없고 젯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속담은 우리가 진정한 사랑의 대상이며 유일한 참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 앞에 나올 때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어느 주일 아침, 전보다 많은 사람들이 예배당에 모였습니다. 외국에서 선교 활동을 하던 목사님이 예배 중에 선교 보고를 할 예정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날따라 더욱더 뜨겁게 찬양하고 말씀을 들었습니다. 드디어 선교 보고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은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며 살아 계신 하나님께 경배드렸습니다. 참으로 감동적인 예배였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한 어린 학생이 선교사를 꼭 만나고 싶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장차 허드슨 테일러나 언더우드 같은 훌륭한 선교사가 이 교회에서 나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참으로 흐뭇해했습니다. 선교사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습니다.

“그래, 너는 어린데도 예배를 잘 드리고 선교에 대해 관심이 많은 모양이구나. 내가 무얼 도와주면 되겠니?”
아이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선교사를 바라보면서 대답했습니다.
“외국에서 오래 생활하셨는데, 혹시 외국 우표를 많이 가지고 계시면 저에게 좀 주실 수 없나요? 저는 우표 수집이 취미거든요.”(『참으로 예배하는 자입니까』, 최혁)

어떤 사람이 자기가 출석하는 교회의 초신자들을 대상으로 교회 출석 동기를 조사했습니다. 그들은 아직 거듭나지 못한 채 교회를 건성으로 다니는 부류였는데, 20대는 주로 교제를 위해, 30대는 신령한 지식탐구를 위해, 40대는 소속감을 갖고 싶어서, 50대는 집사, 권사, 장로 등의 명예를 갖고 싶어서, 60대는 먹는 재미로 교회에 출석한다는 통계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마지막 70대는 자신의 사후 장례식을 대비하기 위해 나온다고도 했답니다. 당신은 어떤 목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어떤 목적으로 예배를 드립니까?

예배를 뜻한 헬라어 ‘프로스퀴네오’는 존경의 표시로, 무릎을 꿇거나 엎드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예배가 무언가를 받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음 받은 피조물이라면 나를 지으시고, 독생자 예수님을 통해 나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우리가 잘 아는 탕자의 비유가 있습니다. 돌아오는 탕자를 아버지는 어떤 모습으로 영접했습니까?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눅 15:20)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회개하고 돌아오는 죄인을 품어주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을 엿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자신의 재산을 탕진한 아들을 위해 새 옷을 입히고 새 신발을 신기고 살진 송아지를 잡고 잔치를 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바로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오는 죄인들을 향해 두 팔을 벌리고 기다리시는 사랑의 초대입니다(I love you this musch). 십자가 사건을 통한 만남의 회복이 예배의 부르심이며, 죄인을 당신의 품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입맞춤이라면 우리는 어떤 목적으로 그 품에 달려가야 합니까?

 

조건회 목사
조건회 목사는 20여 년 전, 찬양과 경배 운동이 한국 교회에 널리 파급되던 때에 압구정 소망교회에서 ‘호산나 목요찬양모임’ 지도목사로서 교회 중심의 찬양과 경배 운동을 일으켰다. 예배사역에 대한 깊은 관심과 열정으로 말미암아 ‘한국 다리놓는사람들’의 2대 대표로서 13년 동안 전국적인 예배인도자 콘퍼런스를 개최하고 사역의 국제화에 기여했으며, 이사장으로 섬기고 있다.
현재 서울 예능교회(전 연예인교회)를 24년째 담임하는 목사로서 경배와 찬양 운동에 흐르는 영성을 목회 현장에 적용하여 예배의 부흥을 경험한 그는 거두어 들인 귀한 열매들을 한국 교회에 나누는 것을 주님이 주신 사명으로 알고 ‘예배 목회연구원’을 설립하여 팀워크를 통한 예배 멘토십 사역은 물론 정기적인 세미나를 통해 교회 예배사역의 업그레이드를 위해 힘쓰고 있다.
장로회 신학대학원(M. Div.)과 연세대학교 신학대학원(Th.M.)을 졸업했고 미국 시카고의 맥코믹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박사(D. min.)학위를 받았다. 한성엽 사모와의 사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은 세 아들 정훈, 영범, 영준을 두었다.
저서로서는 『신앙인들의 기도』(도서출판 바울서신), 『예배, 하나님과의 만남』, 『예배, 하나님께 드리는 응답』(이상 다리놓는사람들), 『예배 팀 사역의 노하우』(공저, 다리놓는사람들), 『담임목사가 꿈꿔야 할 예배』(공저, 예수전도단)가 있고, 치유를 주제로 하는 음반 「아무것도 염려치 말고」(1999년, 라이트하우스)를 출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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