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호]탁월함으로 공교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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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신 재능을 계발시키려는 노력은 중요하다”

(이 글은 『하나님의 노래하는 자들』의 제3과 <교육>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내슈빌에 있는 우리의 새로운 개척교회를 처음으로 찾아갔을 때, 음악에 대한 기대는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쉽게도 예배에서 수준 높은 우수한 음악을 거의 경험해 보지 못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의 반주와 찬양대의 첫 몇 소절의 음악을 들었을 때, 제 입이 쩍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평범한 노래와 연주 대신에 들려오는 그 탁월한 소리에 놀라고 말았습니다. 그들의 음악은 스튜디오 레코딩처럼 들렸습니다. – 그러면서도 음악은 완전히 살아있었고 예배는 열정적이었으며 전적으로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진정 어린 예배와 음악적인 빼어남 – 이 두 가지가 동시에 가능했습니다!

슬픈 사실은,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최선보다는 그보다 못한 수준에 만족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가끔 빼어난 음악의 가능성이 다음과 같은 말로 무시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 “하나님은 어떻게 들리든 상관(care)치 않으셔. 그분은 그저 즐거운 소리를 원하시지…” 이 말이 정말 맞는 말입니까?

저는 하나님께서 상관(care)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레위인들에게 예배 인도와 노래의 임무가 주어졌을 때, 그들은 탁월함(Excellence)으로 공교하게(Skillfully) 연주하도록 지시를 받았습니다. 나는 이것을 내슈빌 교회에서 데이브가 인도하는 예배 찬양대가 모범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의 관점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 관점은 저의 사역에 있어서 조금도 부정적으로 작용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희망은 우리가 사역을 할 때, 평범(mediocrity)에 힘을 실어주거나 칭송하는 일을 멈추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음악적으로 공교하게, 그리고 동시에 진정 어린 예배로 회중을 인도할 수 있습니다.

– Tim Davis
tenor; studio singer; vocal director, Saddleback Church,
Lake Forest, California

필요한 궤도 수정

그 후 저는 저의 지나치게 거의 배타적인 음악적 탁월성에의 집착이 예배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본질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결국, 우리는 왕 중의 왕께 찬양을 드리고 있는 것임으로, 성경적인 예배 속에서 성실한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다른 무엇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입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흐름과 추세와 풍조는 온갖 생각과 사상을 떠올라오게 하여 퍼져나가게 하고 있지요(상승하는 조수는 모든 배를 떠다니게 한다).

이 말은 역설적으로, 음악적 우수성의 추구가 더 이상 저의 성공적 예배 경험에서 최우선의 측정척도는 아니지만, 동시에 그것은 사실상 이전보다 지금 더 중요하게 의미를 던져주고 있습니다. 찬양대의 소명과 기초와 관계가 찬양대의 전반적인 사역을 이전보다 훨씬 더 의미 있고 중요하게 만드는 것이라면, 찬양대의 음악적 우수성도, 비록 더 이상 사역의 최우선 요소는 아닐지라도, 그 중요성의 급상승을 생각해볼 때, 간과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새로운 시대의 흐름이 모든 것을 상승시킴으로, 음악적 탁월성의 가치도 증가하는 것이죠. 시편 33편 3절,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즐거운 소리로 공교히 연주할지어다!”, 먼저 소개된 팀 데이비스의 인용문에서 언급된 이 시편의 말씀은 분명하게 아직도 우리에게 해당합니다

요약하면 이런 말이 되겠죠. : 결코 연습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여기에 요점이 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음악적 우수성이 무슨 의미인지 조금 분석해보죠. 우리는 음악작품을 연주하는 올바른 방법의 어떤 학구적인 정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오히려, 의미하는 주안점은 여러분의 교회의 기본적인 음악적 언어에 익숙하고 유창해지라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선호하시는 음악 스타일은 단연코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둡시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멜로디와 하모니와 리듬의 감각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형태의 음악을 다양한 문화 속에서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음악적 언어로 만들어내는 음악의 3요소가 지어내는 다양한 변주곡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배에 있어서 음악감독이 선호하는 음악 스타일을 반영하는 교회가 있지만, 더 좋은 경우는 그래도 교인들이 선호하는 음악을 반영하는 교회입니다. 최상의 경우는 두 쪽 모두가 선호하는 음악 스타일을 반영하는 교회이겠지요. 저는 어느 주일 오후에 켄터키주를 횡단하는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라디오로 매우 순박한 시골교회의 회중들이 부르는 애절한 찬송과 설교를 들었습니다. 비록 음악적으로는 미숙했지만, 더할 나위 없이 순수하고 멋있고 아름다워서 저는 저절로 미소를 머금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문화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었던 것이죠.

저는 또한 뉴잉글랜드와 유럽에 있는 대성전들과 미국의 흑인교회와 미국과 여러 다른 나라에 있는 거의 모든 유형의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한번은 500명의 자메이카 예배담당 목회자들에게 흑인 가스펠 성가 부르는 방법을 강의하려고 시도했는데 그건 저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말씀드리는 요점은: 여러분이 예배 인도의 책임을 맡았을 때는, 음악적 언어나 혹은 여러분의 회중과 가장 성공적이며 완전하게 의사소통할 수 있는 언어들을 알아내고 그 언어들로 노래하는 것은, 여러분의 일이요 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여러분이 예배에서 회중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예배 순서에 있어서는 탁월함을 가지고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여기서 저의 유일한 걱정과 경고는, 그러한 탁월함을 적용하는 어떤 음악적 상황에서는 회중의 음악적 수준보다 너무 높은 수준의 찬양대가 사람들에게 이질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확신하기로는 얼마든지 그렇게 되지 않도록 할 수 있으며, 예배인도자는 예배 인도에서 필요한 모든 기술적 탁월함 속에 영적인 차원과 음악적인 차원을 잘 조화시킴으로써 그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하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회중이 이해하고 있는 용어로 직접 소통하는 자리에서만, 그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찬양과 경배 속의 자신들의 음악적 언어를 완전하고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고 느낄 것입니다.

 대표적 사례 :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음악적 예배 표현은 공교롭게도 흑인 복음성가입니다. 그 코드와 리듬과 열정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 음악을 백인 청년으로서도 꽤 잘 연주할 수 있는 전문가가 되는 것을 주요 목표로 삼았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괜찮을 정도로.

최근에 제가 섬겼던 교회는 흑인 가스펠 뮤직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그 음악은 자신들의 교회 회중의 음악적 언어가 아니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그 교회에서 음악감독으로 사역을 시작하면서, 몇 곡의 흑인 가스펠 뮤직풍의 노래를 찬양대가 불렀을 때, 이 교회 회중의 리더들이 무슨 음악을 선호하고 있는지 알게 되었죠. 크리스 톰린(Christopher Dwayne Tomlinㅡ백인 CCM 아티스트)은 예스! 커크 프랭클린(Kirk Dwayne Franklinㅡ흑인 가스펠 뮤지션)은 노!

저는 흑인 가스펠 뮤직을 볼 때, 그 음악의 상대적인 장점에 대해 얼마든지 계속해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신에 저는 비록 약간의 발 구르기와 소리 지르기를 동반하지만, 찬양대가 로큰롤 예배 송을 부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는 한 모든 것을 다 배우겠다고 결심했습니다! 그리고 그거 아세요? 여러분의 찬양대가 그 소리를 제대로 내기에 충분히 젊다면, 할 수 있고 효과가 있습니다!

왜 탁월함인가요?

그러면, 한마디로 말해서, 예배음악에서 탁월함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무엇일까요? 제가 믿기로는 그것은 간단히 말해서, 그 말할 수 없이 귀한 우리의 궁극적 목적인 예배 속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최고를 내어놓는 그 기쁨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입니다. 다윗이 사무엘하 24장 24절에서 말한 대로입니다: “값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주의하십시오! 만일 우리가 허락하면, 음악은 무자비한 감독이 될 수도 있습니다. 제3장에 나오는 패러다임 차트에서 보셨듯이, 우리는 “재능을 찬양”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신 분을 찬양”합니다. 당신의 최선의 최고를 드리십시오. – 그러나 그것을 그분께 드리십시오!

                        김영국
김영국 목사님
대광고와 한양대학을 졸업하고 1974년 미국으로 이주 Hope International University에서 신학과 음악목회를 전공하였고 척 스윈돌 목사와 그의 음악목사인 하워드 스티븐슨의 영향을 받았으며 27년동안 남가주 오렌지 카운티의 큰빛한인교회서 사역했다. 지금은 음악목회연구원을 통해 그 사역을 더욱 구체적으로 준비하고 있다. 저서로는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음악목회 프로그램’ ‘성공적인 예배를 위한 찬양과 경배’(한국장로교출판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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